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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부자를 알라/부자를 알라 - 인물편 2021. 4. 5. 12:10반응형
스티브 잡스
스티븐 폴 "스티브" 잡스(Steven Paul "Steve" Jobs)는 미국의 기업인이었으며 애플의 전 CEO이자 공동 창립자이다.
2011년 10월 5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2011년 임종 전 그의 순 자산은 $10.2 billion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Joanne Schieble (후에 Joanne Simpson)과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교 정치학과의 조교였던 Abdulfattah "John"Jandali, 두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생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잡스의 생물학적 어머니인 시블의 친아버지가 잡스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잔달리와 결혼하면 부녀의 연을 끊겠다고 위협하는 탓에 입양을 결심하게 되었고
당시 회계사로 일하고 있던 Clara와 해안 경비대 베테랑이자 기계공으로 일하고 있던 Paul Jobs에 의해 입양되고
Steven Paul Jobs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티브 잡스의 양아버지인 폴 잡스는 스티브 잡스가 어렸을 때 가족 차고에서 전자 제품을 연구했다.
폴 잡스는 스티브 잡스에게 전자 제품을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또한 폴은 차고 안에 있던 작업대의 반을 스티브에게 주며 보이지 않는 뒷부분도 앞면과 같이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전달해 주었다.
이는 후에 잡스의 제품 철학이 된다.
잡스의 집은 디아블로 가 286번지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 일대의 집들은 대부분 부동산 개발업자 조셉 아이클러가 지은 것이었다.
아이클러는 깨끗하고 심플하면서도 저렴한 주택들을 지었으며,
잡스는 아이클러의 깔끔한 디자인이 애플 컴퓨터가 애초부터 추구했던 디자인이라 밝혔다.
당시 캘리포니아에는 군수산업 붐이 일어났으며, 첨단 기술이 밀집된 지역이 되었다.
그 영향을 받아 잡스는 동네의 어른들에게 여러 질문을 하며 엔지니어링에 대한 흥미를 키워 갔다.
4학년 말에 잡스는 힐 선생의 권유 아래 수학 능력 평가를 보았고,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학 능력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자 잡스 부부는 잡스를 한 학년만 월반시키기로 결정하였다
9학년 시절에 그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그 주가 되는 것이 반문화 운동이었다.
잡스는 반문화 운동에 빠져 있던 12학년의 여러 학생들과 많은 교류를 하며 전자공학과 수학, 과학 등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1971년, 워즈니악과 잡스는 애플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한 블루 박스를 제작하고 판매하였다.
잡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래리 랭의 차고를 종종 방문하였는데,
랭은 잡스에게 히스 키트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를 보여줬고 이 키트 덕분에 잡스는 어려서부터 전자제품의 작동원리를 익히게 되었다.
또 랭은 HP 탐구자 클럽에 잡스를 합류시켰다.
잡스는 이 클럽에서 거대한 몸집의 컴퓨터들을 볼 수 있었고, 잡스는 이 컴퓨터를 아주 인상적으로 바라보았다.
잡스는 고등학교 시절에 다양한 일을 하였는데, HP의 조립라인에서 반복되는 조립을 하는 일과 신문 배달, 전자 기기 상점에서 재고품을 정리하는 일 등이었다.
잡스는 HP에서 동료 직원들보다는 위층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과 더 친해졌으며, 전자 기기 상점에서는 다양한 전자 기기들을 접하며 즐거워했다.
또한 잡스는 고등학교 때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는데, 전자공학과 창작의 교차점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과학 분야가 아닌 다른 여러 분야의 책들도 관심을 가지고 많이 읽기 시작했고, 음악도 많이 들었다.
대학 졸업 이후 잡스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앨터스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 비디오 게임 제조사 아타리의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엔지니어였던 앨 알콘에 의해 고용된다.
아타리에서도 잡스는 고집스러운 면과 남을 깔보는 성격을 내보였지만, 아타리의 창업자 놀런 부슈널은 잡스를 높게 평가하여 그가 야간 근무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잡스는 아타리에서 몇몇 게임이 개선되도록 도왔으며, 복잡한 설명서를 읽을 필요가 없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아타리 게임에 큰 영향을 받았다.
잡스는 아타리에서 일하던 도중인 1974년 초, 인도 순례 여행을 떠났고 7개월간의 여행 후 다시 아타리로 돌아와 일하였다.
혁신의 시작
잡스가 21 살이었던 1976년, 그와 워즈니악은 잡스의 가족 차고에서 Apple Computer를 시작했다.
그들은 잡스의 폭스바겐 버스와 워즈니악의 공학용 계산기를 팔아서 벤처 사업에 자금을 댔다.
워즈니악은 사용자 친화적인 개인용 컴퓨터 시리즈를 생각해냈고, 잡스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애플은 처음에 컴퓨터를 개당 $ 666.66에 판매했다.
1980 년에 Apple Computer는 거래 첫날이 끝날 무렵 시장 가치가 12 억 달러에 달하는 상장 기업이 되었다.
1984 년 애플은 the Macintosh를 출시하였지만 매킨토시는 여전히 IBM과 호환되지 않았다.
스컬리는 잡스가 애플을 해치고 있다고 믿었고 회사 경영진은 그를 단계적으로 퇴출시키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가 공동 설립 한 회사와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지 않았던 잡스는 더 소외된 지위에 밀려 1985 년에 애플을 떠났다.
1985년 Apple을 떠난 후 잡스는 NeXT, Inc.라는 새로운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업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전문 운영 체제를 미국 주류에 판매하려는 시도에 실패했고 결국 Apple은 1996 년 4 억 2900만 달러에 회사를 인수했다.
1986년에 잡스는 조지 루카스로부터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했고, 이후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다.
잡스는 회사 이름을 픽사로 바꾸고 10년간 6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할리우드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로 키워냈다.
픽사는 여러 번 단편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오스카상을 받았으며, 그 뒤로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는 디즈니사에 합병되었다.
1997년 잡스는 애플의 CEO 직위로 돌아왔다.
잡스가 1970년대에 애플의 성공을 이끌었던 것처럼 그는 1990년대에 회사를 재활성화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새로운 관리 팀, 변경된 스톡 옵션 및 연간 1 달러의 자체 연봉으로 잡스는 애플을 다시 궤도에 올렸다.
잡스의 독창적인 제품 (예 : iMac), 효과적인 브랜딩 캠페인 및 세련된 디자인은 다시 한번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스티브잡스가 설립한 애플 주식회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하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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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 [부자를 알라 - 기업편] - 애플 주식회사 1부
정리하면서 떠오른 스티브 잡스의 말이 하나 있다.
"Sometimes life is going to hit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때로 인생이 벽돌로 너의 머리를 때릴 것이다. 믿음을 잃지 마라"
반응형'부자를 알라 > 부자를 알라 - 인물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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